태국 12세 소녀의 ‘플라스틱 전쟁’

태국의 12세 환경분야 활동가 레일린 '릴리' 사티타니산. [김정연 기자] [출처: 중앙일보] 매일 전화 20통…태국 12세 소녀의 '플라스틱 전쟁'

“솔직히 ‘플라스틱-프리(free)’를 실천하는 건 힘들고 불편해요. 그래도 불편한 게 지구를 해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내가 할 수 있다면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지난달 13일 태국 UN방콕센터에서 열린 UNEP의 해양플라스틱 콘퍼런스에서 발언 중인 릴리> [사진 UNEP]

플라스틱 아일랜드 “해양쓰레기 청정지역은 없다.”

태국의 12살 소녀 레일린 릴리 사티타나산은 태국 내 ‘플라스틱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활동가 중 한 명이다. 지역사회, 정부기관, UN 등 국제기구에서 “일회용 플라스틱을 쓰지 말자”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11일 유엔환경계획(UNEP)이 주관한 해양 플라스틱 컨퍼런스에 참석한 릴리를 만났다.

8살 때 “플라스틱으로 죽는 동물은 억울해”

지난 5월 23일 태국에서 사망한 8개월짜리 아기 듀공 ‘마리암’. 듀공은 멸종위기에 처한 해양 포유류로, 뱃속에 찬 비닐봉지가 사망의 원인으로 추정됐다. 태국 정부는 2020년 1월 1일부터 모든 국립공원 내 일회용 플라스틱의 사용을 금지했다. [AP=연합뉴스]

릴리가 환경 문제에 관심 갖게 된 건 8세 때다. 해변에 가족과 놀러 갈 때마다 쓰레기가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하루는 눈에 보이는 대로 쓰레기를 줍고 돌아왔는데, 다음날 가보니 다시 똑같은 양의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며 “그때 처음 ‘나 혼자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모두가 나서 뭔가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매일 전화 20통 “일회용 플라스틱 쓰지 맙시다”

 

국제학교 8학년에 재학 중인 릴리는 4년 전부터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기업 콜센터 내선 번호로 무작정 전화를 걸고 있다. “이 회사에서 플라스틱을 덜 썼으면 좋겠다.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는데 5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한다. 릴리의 어머니는 “하루에 20~30통씩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옆에서 보면 놀라울 정도”라고 전했다.

릴리는 태국의 대형 유통 체인인 탑수퍼마켓·빅씨·테스코, 태국에서 가장 많은 편의점을 가진 세븐일레븐 등을 방문해 의견을 전달했다. 유니레버·코카콜라 등 다국적기업과도 접촉을 시도하는 중이다.

물론 순탄치만은 않았다. 릴리는 2년 전 세븐일레븐의 운영사를 방문했던 경험을 밝혔다. 릴리가 요청사항을 밝히자 회사 측은 “이미 필요한 조치를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아울러 “어린이가 이런 것까지 할 필요 없다””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릴리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그 회사는 재활용 중심의 플라스틱 사용 억제 조치를 취한다곤 하지만 충분치 않다”며 “맨날 ‘비용이 많이 든다’고 걱정하는데, 돈으로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재활용은 답이 아니에요”

 꾸준한 활동으로 릴리는 태국에선 인지도가 높은 활동가가 됐다. 릴리는 “전엔 혼자서는 변화를 못 만들 줄 알았는데 이제는 ‘내가 변화를 가져올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몇몇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 움직이게 한 다음, 더 많은 사람들과 뭉치면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 같아요”

릴리에 따르면 상당수 기업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중단 요구에 “우리는 재활용을 많이 한다”고만 답한다고 했다. 하지만 릴리는 “그건 수도꼭지가 고장 나서 물이 넘치는 집에서 그냥 물을 퍼내는 데만 급급한 격”이라고 말했다. 전체 플라스틱 폐기물 중 많아야 9%만 재활용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재활용은 답이 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고장 난 수도꼭지로 헤엄쳐 가서 수도꼭지를 잠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릴리는 “돈을 얼마를 벌든, 무슨 직장을 가졌든, 플라스틱 문제는 모두에게 영향을 끼친다”며 “각 기업도 한 달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플라스틱 없는 날’을 하고 있는데, 매일마다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수학 공부 1시간보다 미래 위한 행동이 중요”

릴리는 미래를 걱정했다. 그는 “어두운 미래가 이미 다가온 것 같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인류마저 사라질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기후변화, 플라스틱 문제 같은 이슈 자체가 없는 세상, ‘안전한 지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릴리는 다양한 활동 때문에 수업에 빠지는 일도 잦지만, 학교가 릴리의 활동을 출석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릴리의 어머니는 “지금 당장 수학 수업 한 시간 더 듣는 것보다 릴리가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행동하고 실천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방콕(태국)=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매일 전화 20통…태국 12세 소녀의 ‘플라스틱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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